카발란(KAVALAN). 그리고 탐듀(TAMDHU)

2021. 2. 22. 04:56주린이의 술생활

사당역 인근에서 바를 들어갈 무렵
3명은 받지 않는다는 바텐더의 말에 원래 가려던 곳을 놓치게 되고
그 가게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바를 찾아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곳

메뉴를 살펴보던 쯤 대만의 싱글몰트 위스키 '카발란'을 판매한단 것을 깨달았고
안그래도 평소 맛보고 싶던 술이라 주저없이 카발란 1샷을 주문하게 되었다

카발란
KAVALAN

2017년? 18년?
아시아 위스키로는 최초로 일본 위스키를 전부 꺾고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브랜드이다
잔뜩 부푼 기대감에 잔을 들어 올렸다

코를 대기도 전에 전해져오는 오크통의 향과 달달하지만 균형감 있게 절제되어 있는 바닐라의 향
잔으로 더 가까이 가져다대자 중후한 맛이 물씬 풍겼다

입술로 전해지는 알싸한 원액의 감촉
첫맛은 굉장히 독특한 향이었다.
혀를 자극하는 깊은 나무의 향과 달달한 바닐라의 향이 입천장과 코를 감쌌고
그간 먹어왔던 아시아의 위스키인 화요의 XP, 산토리의 히비키와 더치타와는 확연히 다른 절제된 향이 입 안에서 잔잔하게 여운을 남겼다.

대만은 본디 더운 지방이라 위스키 숙성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다
위스키 숙성중 날아가는 원액을 마치 요정이 들고 날아간것처럼 보인다 하여 엔젤 쉐어(Angels' share)라고 하는데,
대개 위스키의 본산인 스코트랜드,하이랜드 지방에서는 3-4%가 해당되지만, 대만에서는 10%가 넘는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스키의 보관부터 굉장히 까다로운셈. 그것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카발란의 가격은 바틀당 10만원에 육박한다

한모금 한모금 독특한 맛에 감탄하던 중, 바텐더분이 다른 위스키를 적극 권해주셨다. 어린나이에 위스키를 즐긴다는 것이 신기하기라도 하신 듯, 카발란의 최고급 라인인 솔리스트를 권해주셨다.

카발란 솔리스트 쉐리 캐스크
KAVALAN Solist Sherry Cask

57.8도의 도수가 상당히 높은 위스키였다
떨리는 마음에 잔을 손으로 조심스레 들어본다
손을 대고 들어 올리기도 전에 묵직한 위스키의 향이 코안으로 쉴새없이 밀려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건 대박이다'

오크통 숙성기간은 비록 8년 남짓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묵직하고 풍부한 오크통의 향이 강렬하게 퍼져나왔다
잔의 굴곡을 긁으면서 풍기는 진한 향기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코를 대자 묵직한 향에 짓눌려 있던 달큰한 바닐라 향이 수줍은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입안으로 조금 밀어넣자 알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원액의 형이 혀 끝부터 시작해서 목구멍까지 진하게 흘러내려갔다

이내 향은 입안 전체로 묵직하면서도,
마치 어린시절 필통에 들어 있던 구슬 게임에서의 쇠구슬을 튕겨내기라도 하듯이 가볍고 빠르게 퍼져나갔고
나무의 향은 절제된 달달함으로 바뀌어 코끝으로 기분좋게 넘어왔다

정말 완벽했다.
대만의 술이 이정도일줄은

너무 맛있어서 오히려 적게 느껴진 카발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국의 술 문화에 대해서 잠시 아쉬움을 토로하던 중, 바텐더분이 또 하나의 위스키를 추천해 주셨다.
이름도 생소하고, 보통의 애주가가 아니라면 이름도 못 들어 보았을 위스키, 탐듀였다

탐듀 12년산
TAMDHU Aged 12 years

샷잔으로 가볍게 주셨기에
테이스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맛은 아무 향 없이 매끄럽게 넘어갔다
피트함은 남았지만 아일라 종류의 위스키보다 덜했으며, 오크통의 향은 가벼운 듯 했다
달달향 향은 혀끝에서 살짝 났었지만 이내 빠르게 휘발되었다. 가벼운 맛으로 즐기는 위스키인줄 알았다. 뭐, 이전에 바로 카발란을 들이킨 것도 있겠지만.

두 번째로 맛을 보자 피트함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첫맛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특유의 가볍고도 바디감있는 오크통의 향이 입안에 밀려들어오기 시작했고, 오크통의 향이 넘어가면 잔잔하게 바닐라 향이 들어와 서서히 휘발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모금을 들이키자 진정으로 위스키의 맛이 느껴졌다. 아드벡과 비슷한 피트함, 그러면서도 적당한 바디감에 잔잔하게 남는 바닐라 향까지.
잔향은 끊임없이 코와 입천장을 돌며 여운을 남겼고, 물일 들이키며 깔끔하게 안쪽으로 씻겨 내려갔다.

마시면 마실수록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 있지만, 바텐더분도 탐듀의 매력이 첫맛과 그 뒷맛이 다른것에 있다고 하니, 내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모든 위스키를 해치우고 난 뒤, 마지막으로 카발란을 스모킹하여 온더락으로 음미했다
피트한 감은 살고, 달달함만이 남았다.
카발란 본연의 향을 느끼고 싶다면 온더락과 스모킹은 그다지 추천하진 않지만, 샷을 거의 다 먹을 때 쯤 한번쯤 도전해 보는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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